노봉수 교수의 '맛의 비밀' 시리즈 16.
발 난로로 이용되었던 고추의 매운맛
<고추가 익어가는 풍경>
미국 유학 생활 중 여러 채소를 재배하며 자급자족 한 적이 있다. 고추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 식구가 먹을 만큼의 고추를 재배하였고 햇빛에 말려 빨간 고추를 만든 다음 초파기를 이용하여 고추를 빻으려고 했는데 제대로 되지 않고 힘만 들었다. 잠시 후 땀도 나고 하여 땀을 닦으려다가 얼굴을 만졌는데 그것이 화근이 되었다. 고춧가루가 얼굴에 묻어서 화끈거리기 시작했고 계속 닦다 보니 온통 얼굴은 화끈거리고 매워서 매우 고통스러웠던 적이 있었다. 고추의 매운 맛을 톡톡히 경험한 순간이었다.
일반적으로 매운맛은 통증의 맛이라고 표현할 수가 있다. 즉 음식과 닿는 부위에 강한 통증을 유발한다는 점이다. 아마도 다른 맛과는 달리 매운맛이 나는 음식을 먹었을 때 입안만 얼얼한 것이 아니라 뱃속도 화끈거리는 것을 느껴 본적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위에서도 심한 통증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청양고추가 첨가되어 있는 음식이나 인도 요리 중 매운맛이 강한 것을 먹고 나면 속이 화끈거려 뒤집어질 정도로 괴로운 경우가 있다. 맛의 경지를 넘어 통증에 가까운 순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운동을 하다가 다친 후 바르는 연고의 성분을 보면 고추의 매운 맛 성분인 캡사이신이 포함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후끈거리는 성질로 다친 부위의 통증을 유발하여 열을 발생시킴으로써 상처 부위 주변을 치료하는 방식이다. 상처에 따라 차갑게 해야 하는 치료도 있고 뜨겁게 열을 가해 찜질방식을 취하는 경우도 있는데, 후자의 경우 고추 성분이 활용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고추가 소개되었을 때는 식품으로 먹지 않고, 짚신 밑에 까는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옛날에는 버선을 신고 짚신을 신었는데 겨울철 짚신은 바람이 솔솔 들어와 발이 시리기가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짚신 속에 고추를 넣고 뛰거나 걷거나 하면 금방 발이 후끈거리며 따뜻하여 오늘날 손난로처럼 발 난로로 사용이 되기도 하였단다. 그러다가 식품으로 사용하기에 이르렀는데 우리 조상들의 뛰어난 창의력을 가늠해 볼 수가 있다.
<한국적 매운 맛의 대표주자, 고추>
고추를 김치에 넣기 시작한 시점은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도 김치가 시는 것을 방지할 목적으로 천초를 많이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김치를 담글 때 천초유와 겨자유를 버무려 넣음으로써 김치를 상온에서 저장할 때 항균 효과를 얻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항균작용이 있는 겨자성분과 천초의 산슐, 산쇼아마이드 등과 시트로넬랄 정유성분이 김치가 시는데 관여하는 미생물들의 활동을 억제시키는 목적으로 사용하였다.
<음식디미방>에서 산초를 천초라고 소개하였는데 사실 처음에는 ‘초’라 불리다가 후추가 우리나라에 소개되면서 이를 구분하기 위하여 천초로 쓰여 졌다. 그러다가 고추가 들어오면서 이를 다시 산초라 불렀던 것이다. 우리가 추어탕을 먹을 때 사용하는 강한 향신료, 산초가 바로 이것이다. 이처럼 산초와 겨자 등으로 김치의 저장성을 향상시키려고 노력하였고 또 색을 예쁘게 만들기 위하여 맨드라미꽃을 넣기도 하였다. 점차 고추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는데 고추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 천초로 불린 산초도 함께 사용하면서 오늘날 우리들이 먹는 붉은 김치로 조금씩 다가선 것이다.
김치에서 고추는 비타민 C의 공급원이기도 하고, 위암세포의 증식을 억제시키는 효과를 가지는 것으로도 농촌진흥청의 연구 결과 보고에서 나타났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고춧가루가 발효 전 46%를, 발효 후에는 56%의 암세포 성장 억제율을 보였다. 항암제로 알려진 cis Platin이 78%에 근접하는 암세포 성장 억제율을 보이는 것을 감안할 때, 식품으로 먹는 고춧가루의 항암효과는 매우 높은 수준이면서 또한 항암치료에 따른 일체의 부작용이 없다는 점에서 더욱 높이 평가를 받기도 하는 부분이다. 이렇듯 김치에 고춧가루가 포함되면서 한국인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에도 일조를 하였다고 본다.
<고추의 매콤한 맛으로 만든 김치 라면류>
16세기 유럽에서는 식품의 저장 목적으로 후추를 사용하였으며 따라서 후추의 가격은 금값보다도 더 할 정도였다. 항해를 통해서 확보될 수 있는 아시아권의 향신료는 부를 상징하기도 한 탓에 관료들이 집으로 초대한 손님들에게 닭요리에 후추를 얼마나 많이 뿌렸는지 매워서 못 먹을 정도였고 입술이 붓고 통증을 느낄 정도여서 음식도 먹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곤 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은 일이 펼쳐진 것은 “우리는 음식에 이렇게 값비싼 후추를 많이 뿌려 먹지요!” 그만큼 부유하다는 것을 과시하는 목적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후추보다도 고추가 더욱 사랑을 받는 것은 무엇보다도 매콤한 음식을 좋아하는 성향이 있기도 하고 먹고 난 뒤에 땀을 흘리면서 시원함을 느끼는 일종의 중독과도 같은 현상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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