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맛, 그러나 유쾌한 음식점
아무런 연고가 없는 성산로를 가끔 차로 지나다닐 적 마다 인적도 없는 길가에 덩그러니 하나 호기있게 서 있는 국수집이 항상 궁금했었다. 간판도 그냥 “생메밀 면전문점”이다. 또 하나 메밀을 잘 다루는 숨은 고수가 있나 해서 무더운 날 애써 찾아간 곳이 이 집이다.
<생메밀 면전문점 가게 전경>
(성산대로가 차도 위주로 만들어져 걸어 다니는 사람은 별로 없는 장소에 위치해 있지만 8년을 잘 버텨온 이유는 이면 도로에 젊은 독신자들이 많이 살기 때문이란다.)
자동차로 지나가면서 본 느낌으로 매우 작은 집이라고 예상했지만 실내는 겉보기와는 다르게 제법 규모감이 있다. 메밀 메뉴 외에 어지럽게 붙어있는 분식집 메뉴에 약간 의구심을 가지고 들어가 보니...
<메뉴판>
(우려한 대로 메밀만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젊은 한국인이 좋아할 음식들 메뉴가 가득했다. 치즈라면, 카레밥...)
처음 방문했을 때는 무척 땀을 흘리고 가서 자연스럽게 "생메밀 냉면"을 시켰는데 그릇 크기는 흔히들 얘기하는 "세숫대야"만 하다. 엄밀히 말해서 냉면의 범주라기 보다 막국수 범주에 들어간다. 살얼음이 낀 동치미 국물의 막국수에 열무김치가 올라져 있으니, 막국수와 열무국수를 섞어 놓은 스타일이라면 정확하다. 그냥 흔한 메밀막국수의 맛이다. 면은 메밀의 함유량을 운운하기가 좀 민망한, 밀가루 함량이 많은 쫀득한 식감의 제법 굵은 면이다. 평이한 맛이지만 처음 나올 때 그 크기에 일단 입가에 미소를 짓게 된다.
두 번째 방문 했을 때는 "생메밀 꼬치온면"을 주문했다. 오히려 메밀냉면 보다는 흔하지 않은 음식이라는 생각에... 양해를 구하고 주방에 들어가 촬영을 했는데 정말 가게주인 말대로 딱 3분만에 뚝딱 만들어졌다.
<생메밀 꼬치온면 조리 과정>
(꼬치와 멸치국물은 미리 만들어 서빙용 그릇에 담아 놓고, 미리 구입한 메밀 면은 삶자마자 냉수에
헹궈 그릇으로 바로 옮겨 담는다. 차가운 면이 들어가면서 온면은 미지근해 진다. 겨울에는
작업방식이 좀 달라지리라 생각된다. 음식을 빨리 만들어 내는 것에 최적화 되어있다.)
주방에서 일련의 과정들은 주문한 음식을 빨리 내기 위해 최적화 되어있다. 물론 미리미리 멸치육수도 우려야 하고 어묵도 미리미리 삶아 놓는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과정은 음식점을 하는 사람들이 거쳐야 할 숙명이지만...
<어묵꼬치와 메밀온면>
(메밀온면만으로 오는 허전함을 계란과 어묵이 있어서 좀 덜긴 해도 여전히 너무 부드러운 면발의
메밀면만으로는 포만감이 부족함을 느낄 수 있으므로 밥 종류의 다른 메뉴를 추가할 것을 권한다.)
면의 메밀 함량은 그다지 높지 않은 듯. 100% 메밀면 특유의 툭툭 끊어지는 것과 달리 매우 찰지고 쫀득한 식감의 굵은 면이다. 메밀이 대표적인 찬 음식에 속하는데 뜨거운 국물과 만나는 메밀온면은 냉메밀면에 비해 호감이 덜 가는 맛이다. 메밀면은 한국인들이 대체로 좋아하는 쫀득한 식감을 가지고 있는 반면 메밀온면은 지나칠 정도의 부드러운 식감과 포만감도 부족한 점 등 호불호가 있을 듯 하다.
메밀온면의 허전함을 메우기 위해 이 집의 독특한 음식 하나를 더 추가했다. 바로 "도시락라면정식"이라는 메뉴이다. 보통 라면정식이라면 김밥이나 공기밥 정도가 라면에 추가되지만 이 집은 "도시락 비빔밥"이 라면과 한 세트로 이루어져 흥미를 유발시킨다. 처음 이 집에 들어서서 가장 잘 나가는 음식이 뭐냐고 물었을 때, 메밀국수 종류라는 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라면정식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주방 안에 정리된 도시락과 조리기구들>
지금이야 학교에 급식제도가 있어서 도시락 자체가 무의미해졌지만 4~50대 이상이면 아마 이런 도시락에 관한 추억이 있으리라 짐작된다. 이미 10년도 전에 남이섬 음식점에서 이런 "도시락 비빔밥"을 접한 이후 처음이다. 이런 음식이 생소할 아이들을 데리고 일부러 찾아가서 엄마, 아빠의 옛 추억을 들춰 보여주는 것도 큰 재미라고 생각해서 이 메뉴를 추가했다.
<도시락 라면정식>
(도시락에는 볶은 김치, 동그란 소시지, 계란, 김가루가 들어가 있다. 도시락라면정식 메뉴이다.
부모들의 추억을 아이들에게 들려주거나 본인의 추억을 되새김 하며 한번쯤 외식하기에 좋은 곳이다.)
이 집은 유쾌하다. 음식 맛은 평이하지만 국수그릇의 어마어마한 크기에 미소 짓고, 라면 정식에 함께 나오는 비빔밥을 담은 "도시락"을 추억하며 미소 짓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를 가장 유쾌하게 한 것은 바로 내 질문에 답한 젊은 여주인의 시원시원한 답변이다. "메밀에 대해 자랑하실 것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죠?" 라고 했더니 "자랑할게 없어요! 다 사서 하는걸요~"
<이 가게의 특징>
(이 가게가 살아남은 이유, 바로 “매식제” 때문이다. 인근 공사장, 독신자들, 의무경찰 등이
고정적으로 식사를 하고 매 끼니마다 횟수를 기록하여 돈을 차감해 가는 제도로 나도 대학 다니면서
하숙집 인근에 식당을 정해서 대학 노트에 횟수를 적어나갔던 추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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