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찬음식으로 선보여 연일 상종가
남북정상회담과 평양냉면
<평양냉면>
남북정상회담이 끝나고 평양냉면집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 만찬에서 옥류관의 평양냉면을 선보이면서 연일 상종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여름철 가장 즐겨 찾는 음식도 아마 ‘냉면’ 일듯하다. 최근 2년여 전부터는 유독 평양냉면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미식의 기준이 마치 평양냉면을 즐길 줄 아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로 구분하기도 하고, 먹는 방법에 대해서도 갑론을박할 정도로 평양냉면이 이슈가 되고 있다.
사실 평양냉면은 처음 접했을 때 쉽게 매력에 빠질 수 없는 음식이다. 면은 툭툭 끊어지고, 국물은 밍밍한 것이 자극적인 맛을 좋아하는 현대 한국인들의 일반적인 입맛과는 다소 동떨어진 음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양냉면은 마치 마약처럼 중독성이 강해 ‘평뽕’이라고 부르며 ‘평양냉면 성애자’를 양산하고 있다.
차게 식힌 육수와 시원하게 익힌 동치미 국물을 섞고, 툭툭 끊어지지만 씹을수록 고소한 메밀국수를 넣어 편육, 오이채, 배채, 삶은 달걀 등 고명을 얹어 먹는 평양냉면은 먹는 방법도 마치 프렌치 요리를 먹는 것처럼 지켜야 할 요소들이 많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우선 냉면이 나오면 육수부터 한 모금 들이켜 순수한 육수의 맛을 느껴야 한다. 면에 가위질도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위다. 메밀면은 찰기가 적어 툭툭 잘 끊어지기 때문이다. 일단 냉면이 나오면 그대로 육수에 면을 잘 흩뜨려 면치기 하듯 흡인한 후 비로소 기호에 따라 식초와 겨자를 쳐서 먹는다.
◆ 화청한 동치미국물에 말아먹는 메밀국수
냉면을 언제부터 먹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1849년에 쓰인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따르면 “겨울철 제철음식으로 메밀국수에 무김치, 배추김치를 넣고 그 위에 돼지고기를 얹어 먹는 냉면이 있다”고 하였다. 또 1896년에 쓰인 《규곤요람》은 냉면에 대해 “싱거운 무 김칫국에다 화청(和淸)해서 국수를 말고 돼지고기를 잘 삶아 넣고, 배, 밤과 복숭아를 얇게 저며 넣고 잣을 떨어 나니라”라고 기록했다. 1800년대 말의 《시의전서》 냉면 편에는 “청신한 나박김치나 좋은 동치미 국물에 말아 화청하고 위에는 양지머리, 배와 배추통김치를 다져서 얹고 고춧가루와 잣을 얹어 먹는다”라고 기록되었는데, 고기장국을 차게 식혀 국수를 말아 먹는 장국냉면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한편 고종 황제는 평양냉면을 좋아해 대한문 밖의 국숫집에서 냉면을 배달해 편육과 배, 잣을 넣어 먹었다는 기록도 전해지고 있다.
◆ 담백한 국물, 툭툭 끊어지는 면발 평양냉면의 진수
<남포면옥의 냉면 삶는 모습>
냉면은 이북에서 많이 먹었던 음식이다. 예전에는 한겨울 땅에 묻어놓은 독에서 살얼음을 깨고 동치미 국물을 떠내 국수를 말아 뜨끈뜨끈한 온돌방에서 이를 덜덜 떨어가며 먹었다고 한다. 차갑게 먹는 국수라는 의미로 이름도 냉면(冷麵)이다.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으로 대표되는 냉면은 한국전쟁 당시 남한으로 피난 온 피난민들이 생계를 위해 고향에서 일반적으로 해먹었던 국수를 만들어 팔면서 전국적으로 보편화돼 실향민들에게는 고향을 상징하는 음식과도 같다. 속초, 서울, 부산 등 이북에서 피난 내려온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에 특히 오래된 냉면집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평양냉면은 원래 쇠고기나 꿩, 닭고기를 고아 만든 육수에 시원하게 익은 배추김치 국물이나 동치미 국물을 섞어 만든 국물을 사용했다.
그러나 현대에는 쇠고기 국물을 기본으로 동치미국물을 섞어 사용하며 편육, 오이채, 배채, 삶은 달걀 등의 고명을 얹는다. 냉면육수가 진한 고깃국물이 아닌 동치미 국물이 배합돼 슴슴한 맛이어서 처음 평양냉면을 먹는 사람들은 다소 밋밋하게 느낄 수 있지만 몇 번 먹다보면 시원하고 깔끔한 맛에 점차 끌리는 것이 평양냉면의 매력이다.
◆ 군더더기 뺀 시원하고 담백한 맛, 우래옥
<우래옥 냉면>
우래옥은 순메밀과 먹을수록 당기는 육수로 인정받고 있다. 냉면육수는 한우 암소의 엉덩이살과 다리살 등 한우를 덩어리째 넣고 4~5시간 푹 삶아 끓여낸 후 냉각시켜 기름을 제거해 만든다. 육수를 고아내느라 삶은 한우는 편육으로 썰고 절인 무, 아삭한 배와 함께 올린 후 송송 썬 쪽파를 올려 낸다. 고명에 삶은 달걀이 없는 것과 반찬으로 배추 겉절이를 제공하는 것도 이 집만의 특징이다.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젊은 세대들에게 우래옥 냉면은 무미건조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한 입, 두 입 먹다보면 육수의 시원함과 담백함에 자꾸 찾게 만든다.
◆ 맑고 심심한 육수, 고향의 맛 가장 가까운 맛, 평양면옥
<평양면옥 냉면>
평양면옥은 자체 제분기로 하루 사용량만큼 메밀을 직접 제분하기 때문에 끈기 있고 찰진 면발을 선보인다. 육수는 쇠고기 양지, 사태, 설도 부위를 엄선해 2시간 30분간 끓여서 1차로 냉각기에 식히고, 고기와 채소의 불순물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여과를 시켜 냉각통에 보관해 사용하고 있다. 쫄깃하면서도 툭툭 끊어지는 면은 메밀의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육수는 맑아 심심해 보이지만 실제 맛을 보면 생각보다 진하고 담백하다. 고명으로는 삶은 달걀, 오이채, 배와 무 조각, 삶은 돼지고기와 쇠고기를 올려 소박하다. 고춧가루도 듬성듬성 보인다. 초당두부와 부추, 돼지고기, 각종 채소를 듬뿍 넣은 손만두도 유명하다.
◆ 톡 쏘는 동치미 국물이 주는 매력, 남포면옥
<남포면옥 냉면>
남포면옥은 양지머리와 사태를 푹 고아 만든 고기 국물과 동치미 국물을 배합한 육수가 별미. 을지로 본점에는 입구 오른쪽에 담근 날짜가 꼼꼼하게 적혀 있는 동치미 항아리들이 놓여 있어 옛날식 동치미 국물 냉면에 대한 무한 신뢰를 주고 있다. 육수는 한우의 양지와 사태를 덩어리째 넣고 3시간 동안 끓인 후 식혀 지방을 제거한 고기 국물과 깨끗하게 걸러 숙성시킨 동치미를 8대 2 비율로 섞어 완성한다. 면은 계절에 따라 메밀가루와 고구마전분의 비율을 달리한다.
◆ 맑은 육수에 빨간 고춧가루 인상적, 을지면옥
<을지면옥 냉면>
을지면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맑은 육수위로 동동 띄운 파와 고춧가루다. 언뜻 보기에는 고춧가루와 냉면의 궁합이 어색할 것 같지만 맛은 괜찮은 편이다. 메밀과 녹말을 섞어 만든 면발은 툭툭 끊어지지는 않지만 질기지도 않다. 냉면과 함께 돼지고기 편육이나 소고기 수육을 곁들여도 좋다.
◆ 메밀향 감도는 하늘거리는 면발, 강서면옥
<강서면옥 냉면>
강서면옥은 ‘수십 근의 한우를 우려 만든 육수와 구수한 메밀면이 어우러진 최고의 평양식 물냉면’이라는 설명을 메뉴판에 적어둘 만큼 맛에 대한 자부심이 높다. 이곳의 냉면은 다소 심심하면서도 깊은 육수가 먹을수록 감칠맛을 더하고 하늘거리면서 메밀향이 감도는 면발이 구수하다. 직접 만드는 이북식 손만두는 앞 접시가 꽉 찰 정도로 크다.
◆ 놋그릇에 김 서릴 정도로 시원 담백한 맛, 봉피양
<봉피양 냉면>
봉피양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냉면맛으로 유명하다. 봉피양의 냉면은 방짜유기에 담겨 나와 일단 보기에 고급스럽다. 냉면을 담은 그릇 표면에 성에가 하얗게 앉을 만큼 육수 관리도 철저하다.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를 함께 넣어서 우려내고, 여기에 동치미 국물을 섞어 냉면육수를 완성한다. 면은 거피한 메밀 70%정도와 고구마 전분을 섞어 뽑는데 매끄러우면서도 툭툭 끊어지는 면은 씹을수록 구수하다. 고명으로는 삶은 달걀대신 지단을 올려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얼갈이배추 김치를 올리는 것이 여느 곳과 사뭇 다르다. 냉면과 함께 얼갈이김치, 무, 오이를 골고루 한 젓가락 들어 올려 입에 넣으면 시원하면서도 깨끗한 맛에 중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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