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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어머니는 새하얀 밀가루로 반죽을 치대고 방망이로 밀어 칼국수를 만들었다. 얇게 밀은 반죽을 켜켜이 접어 자로 잰 듯 일정한 두께로 칼로 썰면, 나는 면이 서로 달라붙지 않도록 밀가루를 솔솔 뿌리며 칼국수를 털어 한쪽에 밀어 놓았다. 국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그 때는 그저 ‘오늘은 밥 대신 칼국수를 먹는 날이구나’ 속으로 썩 내켜하지 않으면서도 말 잘 듣는 장녀 노릇하느라 들썩거리는 엉덩이 주저앉히며 내내 어머니 옆에서 그 과정에 동참하곤 했었다.

세월이 흐르니 입맛도 변해 이제는 바람 부는 날이나 비가 내리는 날, 또 요즘처럼 추운 겨울날에는 나도 모르게 시원한 칼국수 한 그릇 먹었으면 싶은 마음이 절로 들면서 '엄마의 칼국수'가 그리워진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제 일 년에 서너 번 볼 뿐더러 연로해 더 이상 수고로움을 끼쳐드리고 싶지 않아 예전 어머니가 만들어 주셨던 그  칼국수가 먹고 싶단 말은 차마 뱉을 수가 없다. 칼국수가 누구나 좋아하고 즐기는 대중적인 음식으로 사랑받는 이유는 아마도 이처럼 유년시절 어머니에게 가졌던 아련한 향수 때문이 아닐까.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 집 밥보다는 외식에 익숙해지고, 칼국수의 종류도 수없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해물칼국수, 사골칼국수, 육개장칼국수, 팥칼국수 등 전국적으로 칼국수집은 어찌 그리 많은지….


▷ 잔칫상에 오르던 귀한 음식, 칼국수

칼국수가 지금은 가장 서민적이고 쉽게 먹을 수 있는 대중음식이지만 고려·조선시대에는 밀가루가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잔칫상에나 오르는 귀한 음식이었다.
돌상에는 아이의 오복을 비는 뜻으로, 혼례상에는 여러 국숫발이 잘 어울리고 늘어나듯 부부금슬이 잘 어울리고 늘어나라고, 또 회갑상에는 국숫발처럼 길게 장수하라는 뜻을 담아 먹었다고 한다.

또한 옛 선조들은 메밀가루를 반죽해 방망이로 밀어서 칼로 굵직굵직하고 조각지게 썰어 익힌 칼싹두기를 즐겼는데, 특별히 보리와 밀 수확이 끝났을 때인 유월 유두(음력 6월 15일)에는 갓 나온 햇 밀로 칼국수와 지짐을 부쳐 이웃과 나눠먹던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 지방색 물씬 풍기는 음식, 칼국수

칼국수는 특히 지방색이 물씬 풍기는 음식가운데 하나다. 주로 지방에서 많이 생산되는 식재료로 국물과 고명을 얹어 조리하기 때문이다. 또 요즘에는 새로운 맛을 원하는 고객들의 니즈가 증가하면서 다양한 식소재를 접목해 새로운 칼국수가 계속해서 탄생되고 있다.

원래 북촌칼국수로 유명세를 떨친 북촌, 삼청동 맛집으로도 유명한 최근 상호를 변경한 이곳「황 생가 칼국수」는 외국인들의 방문도 잦다. 외국인들의 입맛까지 사로잡은 주 메뉴는 '사골 칼국수'다. 사골 칼국수 맛의 비결인 육수는 너무 진하지 않고, 쇠고기 누린내가 나지 않아 칼국수의 맛을 즐기기에 적당하다. 워낙 방문 고객이 많아 반죽은 기계로 하지만 면은 손으로 썰어서 제공한다. 고명으로는 양파와 버섯, 호박볶음과 양념한 파가 들어간다. 여기에 붉은 고추와 고춧가루로 칼칼하게 맛을 낸 겉절이 김치와 새콤하게 잘 익은 백김치가 곁들여져 칼국수 맛을 완성한다.


<사골 칼국수>


김영삼 전 대통령이 청와대 오찬 때 손님에게 접대해서 화제가 되었던 칼국수는 밀가루에 콩가루를 섞어 반죽해 고소하고 면발이 가늘고 부드러운 안동식 칼국수로, 한우의 살코기로 육수를 내 맛이 깔끔하며 후루룩 먹으면 훌훌 넘어가는「소호정」의 칼국수다.

방배동 카페골목의「일미 칼국수」는 한우 육수에 가늘고 고른 면발과 다진 고기, 계란, 호박, 김가루, 양념장 등 5색 고명을 얹어 내는 궁중식 칼국수라고 입소문 나있다.

<궁중식 칼국수>


내륙에서는 주로 사골 또는 닭 육수에 애호박과 감자 등을 넣어 끓이는데 내국인은 물론 일본, 중국관광객들에게도 명소로 자리매김한 명동교자가 닭육수로 칼국수를 선보이는 곳이다. 명동교자는 특히 칼국수에 피가 얇은 만두를 넣어주며, 고춧가루와 마늘을 듬뿍 넣어 버무린 겉절이도 유명하다.


▷ 재료에 따라 다양한 맛, 칼국수

해안지방에서는 바지락 조개 육수나 새우, 홍합, 오징어 등을 넣고 끓인 '해물칼국수'가 주를 이룬다.

<해물 칼국수>


특히 서해안 지역인 태안의「원풍식당」은 박속과 낙지를 주재료로 한 '박속밀국 낙지탕'이 유명하다. 냄비에 물과 무 대신 박을 썰어 넣고, 대파와 양파, 청양고추를 넣어 국물이 칼칼하다. 세발낙지가 붉은 색으로 변하면 바로 꺼내어 양념장에 찍어 먹은 후 육수에 생칼국수와 수제비를 넣어 끓여 먹는다. 포항 구룡포에서는 어민들이 속풀이를 위해 여러 가지 잡어와 고춧가루를 풀어 칼칼하게 끌인 ‘모리국수’가 유명하다.


이밖에도 육개장과 칼국수의 조화가 일품인 서울 「문배동 육칼집」, 메생이와 팥 칼국수가 일품인「앵콜칼국수」, 들깨 칼국수로 유명한 수유리의 「엘림 들깨 수제비」, 집된장과 바지락, 새우, 감자, 우거지를 넣어 끊인 양평「국수리 국수집」의 된장칼국수 등 소문난 칼국수 집들이 곳곳에서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팥 칼국수와 육개장 칼국수>


한편 칼국수처럼 국수 삶은 물을 갈지 않고 고명과 함께 넣어 끓여 먹는 국수를 제물국수라고 하고, 삶은 국수를 찬물에 씻어 건져 사리를 만들어 그릇에 담고 여기에 장국을 붓고 고명을 얹어 먹는 국수를 건진 국수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