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 속 진주,
실향민들이 북쪽 고향 맛을 그리며 만들어 먹던 '연천냉면'
평양냉면의 계절이 돌아왔다. 시인 백석이 슴슴하다고 표현한 냉면. 벌써 서울 시내 평양냉면 명가들의 문턱이 바쁘다. 최근 진흙 속 진주 같은 냉면을 만났다. 이름하야 '연천냉면'. 농촌진흥청 자료에 따르면 연천냉면은 '경기도 연천군 왕징 면에서 재배한 메밀을 이용하여 실향민들이 북쪽 고향 맛을 재현하고자 만들어 먹기 시작한 연천 특유의 냉면'이라고 한다. 연천지역에서 만들어 먹은 평양냉면인 셈이다.
경기도 연천군 왕징 면에는 연천냉면을 만드는 거의 유일한 집인 '황해냉면'있다. 허름한 실내풍경은 이 집의 역사를 말해준다. 간판에는 '신스(since) 1980'이라고 적혀있다.
<황해냉면 외부 전경과 내부 전경>
하지만 단골들의 증언에 따르면 1970년대 처음 문 열었다. 당시에는 왕징면 사무소 인근에 있었다. 지금의 주소지인 무등리 68-3번지로 이사 온 때가 1980년대인 것으로 추정된다. 냉면집의 역사를 생각한다면 당연히 세월의 넉넉함이 밴 이가 주인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주인은 앳된 얼굴의 이시연씨였다. 그의 나이 23살. 홀 서빙을 돕는 이승건씨도 25살의 젊은이다. 두 사람은 남매다.
<황해냉면의 현 운영자인 이시연씨>
사연을 들어보니 탄식이 터져 나온다. 이들이 없었다면 황해냉면은 사라졌을 것이다. 황해냉면의 창시자는 김순년(76) 할머니와 황해도가 고향인 그의 남편 이기관씨다. 김 할머니는 2009년 할아버지가 작고하자 혼자 냉면집을 운영하다 인근에서 찜질방을 운영하던 시연씨의 이모와 친해졌다. 나이로 힘이 부쳤던 할머니는 냉면집 운영을 시연씨의 이모에게 임대를 줬다. 시연씨는 이모를 돕기 위해 왔다가 3년 전부터 아예 자신이 운영을 맡았다. 3년간 김순년 할머니에게서 황해냉면 맛의 비결을 전수받기도 했다. 시연씨는 연신 냉면 만드는 일이 "정말 재밌다, 세상에서 제일 재밌다"고 말한다.
<황해냉면의 냉면과 면발>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시절 황해냉면은 지역의 최고 맛집이었다. 군인들도 줄 서서 먹던 맛집은 지금 퇴색의 기운이 역력하다. 안쓰럽다. 냉면 맛은 서울의 냉면 명가와 견줘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소요산역 근처 작은 밭에서 재배한 메밀"과 옥수수 전분, 밀가루를 조금 섞어 면을 만든다고 한다. 껍질을 깐 메밀과 안 깐 메밀이 같이 섞인다. 한우 잡뼈, 사골, 사태 등으로 우린 육수와 동치미 국물도 재료다. 김 할머니는 원래 사골을 주재료로 육수를 냈으나 시연씨가 조금 변형시켰다. 그의 입맛에는 사골을 주재료로 낸 육수는 조금 느끼했다.
<황해냉면의 꿩만두와 수육>
실향민 일부는 분단이 곧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갈 줄 알았다. 그런 생각 때문에 더 남하하지 않고 연천에 삶의 보따리를 풀었다. 연천냉면의 시작이다. 따지고 보면 의정부의 유명한 '평양면옥'의 출발지도 연천이었다. 연천냉면 맛에는 애잔한 우리 역사가 녹아있다. 가격은 7000원. 요즘 1만원 대가 훌쩍 넘는 냉면 값에 혈압이 오르는 이들에게는 반가운 집이다.
<평남면옥 입구와 냉면>
내친 김에 동두천의 냉면 명가 '평남면옥', 의정부의 '평양면옥'도 휘돌아 냉면 맛을 보면 좋겠다. 1950년대 문 연 '평남면옥'은 그야말로 육수 맛이 일품이다. 육수에서 고아한 풍모가 느껴진다. 첫 모금에 한달음 다 비우게 된다. 냉면의 처음과 끝은 혀에 닿는 육수의 첫 맛이 결정짓는다. 쇠고기 육수와 동치미가 적절하게 배합돼 뼈 속까지 시원한 감칠맛을 선사한다. 면은 마치 뱀의 껍질처럼 부드럽다. 메밀가루와 고구마 전분을 적당히 섞었다. 이 집도 사연이 있다. 지금 주인은 윤혜자(54)씨다. 곱다.
<평남면옥의 돼지고기 겨자무침과 현 운영자 윤혜자씨>
그는 10년 평남면옥의 주인이 됐다. 본래 창업자는 평양이 고향인 김종연(76)씨의 아버지였다. 김종연씨는 아내 한음전씨와 2대째 운영하다가 아내가 10여년 전 작고하자 지금의 주인인 윤씨에게 팔았다. 김씨와 윤씨는 20년 지기다. 냉면집의 역사를 듣다 보면 우리 인생사가 이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평남면옥의 냉면과 수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