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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odle talk

[푸드칼럼] 6,000원이 주는 든든한 행복, 엘림 들깨수제비∙칼국수

6,000원이 주는 든든한 행복,

엘림 들깨수제비·칼국수

 

 

 

평소 내가 제일로 치는 식당은 가격 부담 없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언제라도 편안한 차림으로 갈 수 있고, 갑작스레 지인이 방문해도 “우리 동네에 맛있는 식당이 있는데 가볼까?”라고 권할 수 있는 그런 식당이 우리집 주변에 한 두 곳만 있어도 행복할 듯하다. 그런데 불행히도 내가 사는 동네에는 ‘가격도 싸고, 맛있고, 양이 푸짐한’ 이라는 요구조건을 충족시켜 주는 음식과 식당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가격이 비싸거나, 맛이 없거나, 양이 적거나 한 가지쯤은 결격사유가 꼭 있다.

 

서울 강북구 수유리에 있는 「엘림 들깨수제비·칼국수」는 내가 찾는 바로 그런 조건을 갖춘 식당이다. 한옥을 식당으로 개조해 인테리어랄 것도 없이 허름한 식당에 불과하지만 11시 30분에 문을 열자마자 15개의 테이블이 순식간에 만석이 되고, 이때부터 고객들의 긴 행렬이 이어진다. 

 

 <매장 외부와 내부>

 

 

 

6,000원짜리 칼국수에 보리밥, 수육까지 한 상

메뉴는 들깨수제비와 칼국수, 칼국수와 수제비를 반반 섞은 칼제비 그리고 보쌈과 수육, 고기만두가 전부다.

 <메뉴와 들깨칼국수>

 

 

 

그나마 점심에는 보쌈과 수육을 판매하지 않는다. 점심시간에 보쌈과 수육을 팔면 당연히 술을 팔아야 하기 때문에 수육과 보쌈 그리고 술은 판매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수육을 판매하지 않는다고 너무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점심시간에 칼국수를 주문하면 보리밥과 수육이 세트로 나오기 때문이다. 6,000원짜리 칼국수에 어떻게 이런 메뉴를 제공할 수 있는지 놀라워 이렇게 팔아도 괜찮으냐고 이곳 주인장 김영록 씨에게 물으니 “늘 좌석이 부족해 기다리거나 합석을 하는 일이 다반사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찾아와 주는 손님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에 서비스를 해줄 것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칼국수와 함께 고기를 먹으면 훨씬 포만감이 들고 만족스러워 할 것 같아 과감하게 수육을 서비스로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칼국수와 제공되는 보리밥과 수육 세트>

 

원가가 높아지고 이익이 낮아지지만 이왕 서비스를 제공할 거면 확실하게 하자는 생각에 망설임이 없었다고 한다. 이와 함께 김영록 씨는 “이곳에서 칼국수를 먹고 나가는 고객들은 포만감에 행복하고, 그 모습을 보는 것 또한 행복하니 ‘6,000원의 행복’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지 않냐”고 반문한다.

 

 


음식은 추억과 맛과 향수를 채우는 것

 

엘림 들깨수제비를 먹어 본 사람들은 그 깊은 맛과 음식에서 느껴지는 정성을 알아차린다. 그렇기 때문에 엘림 들깨수제비 맛을 한 번 보면 그 매력에 빠져 십중팔구는 또 생각난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엘림은 음식에 사용하는 들깨가루, 육수, 면, 배추 등 재료 준비부터 음식을 만드는 것까지 한마디로 지극 정성이다. 칼국수와 수제비 반죽은 당일 사용할 분량만 별도의 제조실에서 반죽해 숙성한 후 매장에 갖고 오는데, 일반 면이 아니라 톳과 함초가루를 넣었다. 산성인 밀가루와 알칼리성인 톳은 궁합이 좋고 일반 밀가루 면에 비해 식감이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톳과 함초 가루로 반죽한 칼국수와 수제비용 반죽>

 

 

 

들깨는 거피해 당일 사용할 분량만 갈아서 사용하는데, 고추씨를 넣어 우린 육수에 함초와 쌀가루를 함께 넣어 묵직하지만 깔끔한 맛을 낸다. 음식의 간도 배추 절일 때만 천일염을 사용하고 모든 음식은 함초 소금으로 간한다.

 <당일 사용할 거피한 들깨가루>

 

 

 

또 들깨수제비가 나오기 전에 제공하는 보리밥은 늘보리로 짓는다. 늘보리는 번거롭지만 과거 엄마들이 해먹던 방식대로 일단 한 번 삶은 후 물에 씻어 채반에 담아 물기를 뺀 후 밥을 지을 때 쌀과 함께 넣는다. 이렇게 하면 보리밥이 훨씬 부드러워 목 넘김이 좋다고. 밥을 할 때 다시마를 몇 조각 넣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보리밥용 늘보리>

 

 

 

칼국수집은 함께 제공하는 배추 겉절이를 빼놓을 수 없다. 엘림들깨칼국수는 매일 아침과 점심시간이 끝난 후 하루 두 번 정해진 레시피에 따라 겉절이를 만든다. 아침에 담근 겉절이는 오후가 되면 아삭한 식감이 사라지기 때문에 번거롭더라도 이 또한 고수하고 있다. 또 매년 수천 포기씩 김장을 해 저장해 숙성시킨 후 제공하는 묵은 김치는 겉절이와는 다른 깊은 맛으로 또 다른 매력이 있으며, 수육과 함께 먹어도 좋다.


엘림의 매장 벽면에는 ‘음식은 단지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추억과 맛과 향수를 채우는 것이다’라는 글귀의 액자가 걸려있다. 이런 글귀가 아니어도 이곳은 불과 20~30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내가 살았던 바로 그 집이며, 어머니가 해주셨던 그 맛이다. 가끔씩 위로가 필요하거나 따뜻한 정이 그리울 때 엘림 들깨수제비 칼국수의 건강한 칼국수 한 그릇이면 몸도 마음도 저절로 힐링이 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