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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훈 교수의 식품심리학 ④

<눈으로 맛볼 수 있다면>

 

 

 

구매를 주저하다

 

마트에 가서 물건을 집어 들고 주저해 본적이 있는가? 이것을 살까, 말까? 우리는 식품을 살 때 왜 주저할까? 잠깐 옷 가게로 무대를 옮겨 보자. 옷 가게에서 옷을 집어 들면 우리는 옷을 몸에 대어 거울에 비추어 보거나, 피팅룸으로 들어가서 입어 본다. 그렇게 하면 그 옷이 나에게 잘 어울리는지, 아닌지를 쉽게 판단할 수 있다. 그래서 내 취향에 맞는 것은 계산대로 가져가고, 취향에 맞지 않는 것은 빈 테이블 위에 던져버리면 된다. 자, 다시 마트로 돌아 오자. 마트에서 내가 집어 든 식품이 내 취향에 맞는지를 체크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맛을 본답시고 손에 잡힌 식품들을 뜯어 입에 넣었다간 파출소로 직행하기 딱 좋다. 특히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먹다가 다른 데로 던져 버리면 확실히 파출소로 가게 될 것이다.

 

우리가 식품을 구매하기 전에 주저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가격도 중요한 요인이고, 품질도 중요한 요인이다. 하지만 품질과는 별도로 과연 이 식품이 내 입맛에 맞을 것인가, 즉 ‘취향’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무리 높은 품질의 식품이더라도 내 입맛에 맞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하지만 식품은 옷과 달라서 구매 전에 마음대로 먹어볼 수 없기에 소비자는 답답하다. '기껏 돈 주고 샀는데 내 입맛에 안 맞으면 어떡할까?'라며 걱정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예전에 먹던 브랜드의 제품을 그대로 살 수 밖에 없다. 이를 우리는 ‘관성적 구매’라고 한다. 관성적 구매는 최선은 아닐지라도 차선은 가기 때문에 우리는 빈번한 관성적 구매를 하곤 한다.

 

 

 

그래서 신제품은 판매가 어렵다

 

더 답답한 것은 실은 식품제조사다. 어렵게 신제품을 개발해서 출시하였는데, 소비자들이 품질 때문이 아니라 내 입맛에 맞을지 아닐지를 몰라서 구매를 꺼린다면 정말 안타까운 일이 되기 때문이다.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대기업은 좀 나은 편이다. 소비자들은 자신이 즐겨 사먹던 제품의 제조사 브랜드는 믿고 구입하는 편이다. 하지만 중소기업이나 지역 농협들처럼 브랜드 인지도가 낮은 업체가 만들어 낸 전통식품의 경우는 더 안타깝다. 소비자들에게 나의 맛을 어떻게 알릴까? 시식코너는 좋은 옵션이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하기 어렵고 비용도 엄청나게 드는 세일즈 방법이다. 중소기업 입장에선 선택하기 어렵다.

 

와인의 경우를 보자. 워낙 종류가 많고, 라벨을 봐도 무슨 말인지를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맛을 보고 구매할 수도 없다. 나 역시 와인을 좋아하지만 새롭게 출시된 와인이 내 입맛에 맞을 지 아닐 지는 마셔보기 전엔 결코 알 수 없다. 그래서 구매할 때 마다 고생한다. 그러던 중 wine.com이라는 미국의 와인 판매 사이트에서 와인들을 검색하다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어떤 와인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 와인을 설명하는 페이지에서 아래 <그림 1>과 같은 ‘맛 시각화표’를 발견하고 감탄을 하게 된다. 아래 맛 시각화표를 보면 이 와인은 달지 않고, 균형 잡힌 바디감, 그리고 산미는 좀 낮고, 탄닌향과 오크향은 비교적 강한 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이 와인이 딱 내 입맛에 맞을 것이라는 것을 이 그림만으로 알 수 있었다. 혀로 맛보지 않았는데, 단지 눈으로만 보고 나는 이 와인이 내 취향에 맞을 것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리고는 바로 구매로 이어진다. 물론 이 와인이 자신의 취향에 맞지 않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이 또한 좋다. 잘못 구매하는 실수를 피할 수 있다. 맛 보지 않고도 맛을 볼 수 있다면 소비자에겐 좋다. 쉽게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 1> 와인 맛 시각화표 (www.wine.com)

 

 

 

김치와 고추장에 적용해보자

 

나는 wine.com의 이 맛 시각화표에 감동했다. 그래서 우리나라 전통식품인 김치와 고추장에 적용시켜 보고 싶었다. 김치와 고추장이야 말로 우리나라 각 지역 특유의 맛과 향이 담긴 굉장히 좋은 제품들이 많은데, 안타깝게도 이런 지역 농협이 생산하는 독특한 김치와 고추장은 소비자들에게 자주 노출될 기회가 적어서 판매가 어렵다. 게다가 김치와 고추장이야 말로 우리 주부들의 취향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제품이다. 그래서 나는 이 맛의 시각화표 한 장을 출력해서 농촌진흥청을 찾아가 사정을 이야기하며 김치와 고추장에 시각화표를 한번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농촌진흥청은 선뜻 연구비를 지원해 주었다.

 

당시 나는 KAIST 경영과학과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는데, 나는 이 연구비를 가지고 충남대 식품영양학과의 김미리 교수님을 찾아 가서 공동연구 제안을 드렸고, 그래서 우리는 함께 연구를 시작하였다. 나는 경기도 각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협, 농가 단위의 ‘로컬’ 김치, ‘로컬’ 고추장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김미리 교수님께서는 이 제품들을 여러 측정 장비로 당도, 염도, 산도, 스코빌 지수(매운맛 정도)를 측정하고, 연구원들은 여러 제품의 맛을 보면서 이 수치를 보정했다. 같은 당도이더라도 소금이 더 들어가면 더 달게 느껴진다. 그래서 단순한 장비 측정만으론 맛의 시각화표를 만들어 낼 수 없다. 사람이 직접 맛을 보고 값을 조정해야 한다. 불쌍한 충남대 연구진들은 한 달 동안 수많은 김치와 고추장을 매일 반복적으로 맛보아야만 했다!

 

수많은 고생 끝에 우리는 <그림 2>와 <그림 3>과 같은 맛의 시각화표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 물론 이 두 제품뿐만 아니라 20여 가지 제품에 대한 맛의 시각화표를 만들었다. <그림 2>는 연안김치에 대한 맛의 시각화표인데, 시중에 파는 일반 김치들보다 짠맛은 약하고 단맛은 강하며, 매운맛은 매우 강한 제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엔 <그림 3>의 솥짓말 고추장을 보자. 이 고추장은 시중의 고추장 제품들에 비해 더 짜고, 덜 달며, 강한 메주향을 가진 독특한 고추장이다.

<그림 2> 김치와 맛의 시각화표 (연안김치)

 

 

 

<그림 3> 고추장의 맛 시각화표 (솥짓말고추장>

 

 

 

우리 누들푸들의 주부 독자들이여, 지금 눈으로 맛을 보고 계신가요? 이 김치는 당신의 입맛에 맞는 제품인가요? 매운 김치를 특히 좋아하는 소비자라면 이 제품이 자신의 취향에 맞다는 것을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단지 눈으로만.

 

 

 

맛을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 질까?

 

우리는 단지 맛의 시각화표만 만든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이 맛의 시각화표를 적용한 김치와 고추장 제품들을 실제 전자상거래 사이트에 판매를 하는 실험을 강행하였다.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대성공이었다! 소비자들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제품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고, 그 제품들을 대량 구매하는 행동을 보여줬다. 매운맛을 좋아하는 소비자들은 매운맛이 나는 김치와 고추장을 한번 구매할 때 대량으로 구매하였다. 단맛이 싫은 소비자들은 단맛이 덜 나는 제품을 대량 구매하는 행동을 보였다. 맛의 시각화표를 적용하지 않은 다른 여타 김치, 고추장 제품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결과였다. 구매 불확실성이 줄어드니 이런 현상이 발생했다. 농촌에 위치한 중소기업들은 맛의 시각화로 상당히 큰 매출을 올릴 수 있었다. 소비자에게도 좋고, 생산자에게도 좋은 결과를 도출 할 수 있었다.

 

옷을 사기 전에 우리는 옷을 거울 앞에서 대보거나 피팅룸에 들어가서 입어 본다. 그리고 나에게 잘 맞는 옷을 산다. 하지만 식품은 그렇게 하기 어렵다. 미리 맛볼 수가 없다. 대신 이런 ‘맛의 시각화’가 도움이 된다. 주위를 잘 둘러 보시라. 그리고 식품 포장을 꼼꼼히 찾아 보시라. 간단한 수준의 맛의 시각화표는 이미 꽤 많이 식품 포장에 적용되어 있다! 물론 레스토랑의 메뉴판도 꼼꼼히 살펴 보시길.

 

 

<그림 4> 다양한 맛의 시각화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