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특별한 국수열전, '1日 1麵' 식유기
나의 휴가는 매년 가을 무렵 시작됐지만, 올해는 7~8년 만에 ‘여름휴가’란 걸 떠났다. 그러나 8월 초, 극성수기에 떠난 제주도 휴가는 무모한 도전이었다. 휴가를 떠나기 전 여기저기 검색하고, 지인들에게 물어 ‘맛집 리스트’를 빼곡히 적어서 출발했지만 가는 곳마다 사람들로 넘쳐나 아무 소용이 없는 휴지 조각에 불과했다. 조금이라도 입소문이 난 식당은 어김없이 긴 행렬이 이어져, 내리 쬐는 땡볕 아래 1~2시간 속수무책으로 기다려야 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사실 이번 제주 여행에서는 제주의 ‘3대 고기 국수집’으로 불리는 ‘자매국수’, ‘삼대국수회관’, ‘올래국수’를 모두 섭렵하는 것이 1차 목표였다. 제주의 향토음식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다에서 난 신선한 해산물 요리와 제주 흑돼지 요리, 그리고 고기국수이기 때문이었다.
제주에 고기국수가 유명한 것은 예로부터 제주는 잔칫날 돼지를 잡아 돼지 뼈를 우린 육수에 국수를 말고 고명으로 수육을 넉넉히 올려 손님에게 대접해 온 식문화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청정 환경에서 자란 돼지는 그냥 삶아도 누린내가 나지 않아 국수의 육수로 돼지고기가 폭넓게 사용되어 온 것이다.
▲<제주시 일도동 국수문화거리(좌), 국수문화거리에 위치한 삼대국수회관 본점(우)>
휴가 첫날 방문한 국숫집은 국수문화거리에 있는 ‘삼대국수회관’이다. 먼저 자매국수를 방문했으나 내리쬐는 태양아래 족히 2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해 근처에 있는 삼대국수회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삼대국수회관의 고기국수는 진한 육수에 돼지고기 고명과 채 썰어 볶은 당근, 송송 썬 대파, 그리고 양념장이 올려져 나왔다. 양념을 섞기 전 육수를 떠먹어 보니 진한 육수의 묵직함이 느껴졌다. 돼지고기 육수에 약간 거부감이 있는 사람은 테이블에 있는 김가루를 넣고, 양념장을 풀어먹으면 한층 먹기가 수월할 듯했다. 이곳은 국수에 오겹살 수육을 올려 낸다고 알려져 있으나, 내 그릇에만 살코기가 담겨서인지 다소 뻑뻑했다.
▲<삼대국수회관의 고기국수와 멸치국수>
멸치국수는 면처럼 길게 썬 유부와 김을 듬뿍 올려 내는데 유부의 고소한 맛이 국수와 함께 어우러져 담백하면서도 맛이 심심하지 않아 좋았다. 무엇보다 자매국수보다 규모가 커서인지 회전이 잘돼 가자마자 바로 자리를 안내 받을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삼대국수회관 실내>
둘째 날은 표선면에 있는 ‘춘자멸치국수’다. 제주에 있다 하니 지인이 SNS를 통해 강추한 멸치국수 집이었다. 춘자멸치국수는 자그마한 동네 국수집으로 35년이나 된 노포다. 메뉴는 멸치국수 단 한 가지. 여름철이라 계절메뉴로 콩국수가 있었다. 식당 안에는 자그마한 간이 주방과 긴 나무 탁자 2개가 전부다.
▲<춘자멸치국수 외관(좌), 춘자멸치국수 실내(우)>
앉자마자 보통 또는 곱빼기를 주문하면 양은 냄비에 멸치 육수와 삶은 면을 넣고 한소끔 끓인 다음, 잘게 썬 쪽파와 깨소금이 드문드문 섞여있는 고춧가루 한 숟갈을 올려 낸다. 너무나 심플해 뭐 그리 맛있을까 싶어 국물 한 모금 마시는 순간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멸치를 잔뜩 넣어 우린 육수는 진하지만 비린내가 전혀 없이 시원해 술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침에 이 멸치국수로 해장하면 최고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직접 담근 깍두기와 함께 먹는 중면 굵기의 국수는 몇 젓가락 후루룩 거리니 이내 바닥이 났다. 너무 맛있어서 보통 사이즈로 주문한 것도, 한 그릇은 콩국수로 주문한 것이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국수 가격이 보통 3,000원, 곱빼기 4,000원으로 저렴한 것도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멸치국수와 계절메뉴 콩국수(좌), 착한 가격에 최고의 맛을 선사한 멸치국수(우)>
셋째 날은 성산일출봉에 있는 ‘경미네휴게소’로 갔다. 이곳은 성산의 유명한 문어집이자 일명 문어라면으로도 유명하다. 해녀가 잡아 올린 돌문어 숙회와 홍해삼, 전복을 즉석에서 잡아 썰어서 판다. 우리 앞에는 이미 3~4팀이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이정도면 줄 서볼만 하다는 생각에 꽁무니에 섰더니 이내 우리 뒤로 긴 줄이 생겨났다. 20~30분쯤 기다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돌아왔다. 앉자마자 점 찍어 뒀던 문어라면과 전복덮밥을 주문했다.
▲<경미네휴게소 외관(좌), 경미네휴게소 실내(우)>
문어라면은 문어숙회를 썰어 내고 남은 문어와 조개, 오징어를 넉넉히 넣고, 미역을 조금 넣어 끓였는데 꼬들꼬들한 면발과 시원한 국물 맛이 일품이었다. 작은 점포는 테이블마다 라면 국물에 밥까지 말아 바닥이 보이도록 먹고, 국물 한방울 마저 마시는 사람들의 열기로 후끈했다.
싱싱한 전복을 듬뿍 얹어 내는 전복덮밥은 고추장을 조금 넣고 비벼 라면국물을 국 삼아 함께 먹으니 궁합이 매우 좋았다. 경미네휴게소는 사방 벽은 물론 천장까지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이 적어놓은 낙서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전복과 해삼(좌), 문어라면(상), 전복덮밥(하)>
넷째 날, 첫날 방문했다가 대기 줄이 너무 길어 건너 뛴 ‘자매국수’를 다시 찾았다. 역시나 1시간 30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일단 3대 고기국수집 투어 미션을 달성하기 위해 대기표를 받은 후, 올래국수로 달려갔다. 아직 이른 저녁시간이었지만 올래국수는 고기국수가 다 팔려서 서둘러 발길을 돌려 자매국수로 향했다. 다행이 도착하자마자 우리 차례가 되었다.
▲<자매국수 대기고객(기본 1시간 이상 대기)(좌), 자매국수 내부(테이블 6개)(우)>
이곳은 다른 고기국수집과는 달리 재료에서부터 POP홍보까지 상당히 신경을 쓰는 듯 했다. 국수는 노란 치자면을 써 다른 국수집과 확연히 차별화 시켰다. 또 소금은 국내산 토판염을 사용한다는 내용의 문구를 걸어 놓았다.
▲<자매국수의 고기국수(좌), 자매국수의 인기메뉴인 비빔 국수(우)>
고기국수를 주문하니 노란 치자면에 진한 고기 육수와 송송 썬 파, 김가루, 고춧가루 그리고 그 위에 오겹살 수육이 올려져 나왔다. 수육은 쫄깃한 껍질과 부드러운 비계, 그리고 육즙을 머금은 살코기가 조화를 이뤄 고기 고명만으로 보자면 삼대국수회관보다 한 수 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란 치자국수에 수육 한 점 올려 싸 먹은 후, 쌈장에 풋고추를 찍어 먹어도 별미다.
자매국수는 비빔국수의 인기도 높다. 비빔면에는 삶은 콩나물을 함께 버무려 내 마치 쫄면같은 비주얼인데, 그 위에 고기 고명을 올려 냈다. 먹기 좋도록 비벼 낸 국수는 새콤 달콤 매콤한 양념 맛과 수육의 쫄깃함이 더해져 입안에서 어우러지는 맛과 식감이 심심하지가 않았다. 본점은 24시간 운영하니 참고해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