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오의 나라이자 남미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볼리비아는 해발 3,000미터 이상에 있어 남미의 지붕으로 불린다. 잉카제국 일부로 안데스 최고의 문명을 꽃피우기도 했으나 1535년 스페인의 식민지로 전락하였다. 신이 내려준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풍요로운 부존자원마저도 19세기 골드러시 동안 유럽인들에게 약탈당해 두 번 죽임을 당한 셈이다.
세 가지 길
볼리비아의 길은 자연 그대로이다. 가공이나 물질에 지배받지 않는 서로 다른 색깔의 길들이 있다.
첫 번째 길은 우유니 소금호수로 우기인 1~2월 광활하게 펼쳐진 소금 위에 빗물이 고여, 길 위에 투영된 하늘과 구름을 가로지르는 풍경이 예술이다. 2박 3일 정도의 횡단 투어로 볼리비아에서 칠레 사이를 가로지르며 고원 속 아름다운 호수와 플라밍고, 야마떼를 감상할 수 있다.
두 번째 길은 수도 라파즈에서 팜파스 투어로 유명한 루레나바케로 들어가는 죽음의 길이다. 무려 18시간을 불편한 의자에 볼리비아 사람들과 살을 부대껴가며 천길만길 낭떠러지 길을 밤새도록 달린다. 중간 중간 수많은 십자가와 애도의 꽃다발을 보며 죽음의 길에 뿌려진 영혼을 뒤로하고 팜파스가 있는 루레나바케로 들어갈 수 있다.
세 번째 길은 4,000미터 고지에 펼쳐진 웅장한 티티카카 호수 위에 떠 있는 태양의 섬, 이슬라델솔 위를 걷는 길이다. 태양과 가장 가까운 섬인 이곳에서 많은 이들이 태양을 향해 그 길을 따라 하염없이 걷는다.
가난한 나라, 가난한 음식
스페인 무적함대를 피해 고산지대로 옮겨간 인디오들에게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가진 풍요로운 식자원은 찾아 볼 수 없다. 두툼한 소고기 스테이크도 부드러운 육질의 아사도도 없다. 즐겨 먹는 음식은 우리 돈 300원 정도인 뽈요(닭고기)다. 두세 조각의 닭튀김이나 구이에 바람불면 흩날릴 듯한 쌀밥, 샐러드 몇 조각이 전부다.
라파즈의 시장골목에 펼쳐진 그들의 먹거리엔 익숙한 풍경이 많다. 우리의 부침개, 순대와 유사한 것들도 있고 반찬들도 있다. 실제로 식사 중 매콤한 수프를 즐겨 먹으며, 매운 고추 양념장이나 양파 등을 썰어 매콤하게 담은 물김치 형태를 같이 먹는다.
그들의 시장 먹거리 중에서도 단연 손이 가는 것은 비타민이라 부르는 과일 주스와 모듬 샐러드이다. 우리 돈 800~1,000원이면 두 명이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모듬과일 샐러드에 생과일주스가 500cc 컵에 한가득 나온다.
아르헨티나에 아사도가 있다면 볼리비아엔 팀푸(Thimpu), 푸체로(Puchero), 코스틸라(Costillar)가 있다. 양고기를 우리의 보쌈처럼 삶아서 통째로 썰어 나오는 팀푸는 양 냄새가 없어 먹기에 부담이 없다. 함께 나오는 검은 감자는 장기저장에 적합하도록 말려놓은 것이라는데 뻑뻑하고 맛도 별로다. 양고기 튀김 갈비인 푸체로와 등뼈에 고기를 튀겨 나오는 코스틸라도 볼리비아에서만 볼 수 있는 요리이다. 그러나 이런 요리는 고기의 질 면에서 아르헨티나의 아사도와는 큰 차이가 났다.
티티카카 호수의 뜨루차
수만 년 전 지각 변동에 의해 태평양 바다의 일부가 솟아올라 현재 안데스 지역의 티티카카 호수가 되었다고 한다. 염도가 높은 이 호수에는 뜨루차라고 불리는 송어가 많이 잡혀 바다가 없는 그들에게 생선을 맛볼 수 있게 해준다. 티티카카 호수 건너편에 있는 관광도시 코파카바나는 다른 곳과 달리 페루와 인접해서인지 외국인들의 입맛에 맞춘 요리들이 서비스된다.
3,000원 선이면 유럽의 고급레스토랑에서 나올법한 양념을 치거나 깔끔하게 구워낸 뜨루차 요리를 먹을 수 있다. 부드러운 적색의 속살을 썰어 먹은 뒤, 코카잎차로 마무리한다. 코카인의 원료인 코카잎 자체는 차로 마시기에 문제가 없다.
볼리비아의 민족성을 나타내는 말로 “노세”라는 말이 있다. 현지인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단어로, “몰라”라는 의미이다.
시간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볼리비아인, 그들에게 우리의 약속이나 규칙, 효율성은 의미가 없다. 이는 스페인 식민지배 하에서 만들어진 생활방식이다. 무지, 몰상식과 마약으로 힘겨워하는 죽음의 길에서 진정한 안데스의 주인으로 화려하게 부활하는 태양의 길로 나아가길 기원한다.
우유니 소금호수에서
농심 BD팀에서 근무하는 김선호 과장입니다. 농심 연구소로 입사해 소재, 바이오 식품, 건강 관련 업무를 담당하다 뜻한 바가 있어 전세계 음식문화 탐사를 주제로 1년간 세계 일주를 다녀 왔습니다. 이를 계기로 좀더 넓은 방면의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연구원 출신의 전문지식과 전세계 음식문화 체험 노하우를 바탕으로 심심블에서 다양한 정보와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