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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odle talk

[푸드칼럼] 투박해서 거칠어 보이는 면발의 부드러운 반전 '북한식 옥수수국수'

투박해서 거칠어 보이는 면발의 부드러운 반전

북한식 옥수수국수

 

 

국수공장을 가본 적이 없다. 요리사 박찬일이 나폴리의 국수발 치렁치렁 늘어진 국수건조공장을 회상할 때마다, 그가 유년을 보낸 서울 변두리의 국수공장의 추억담을 읊을 때마다 한없이 부러웠다. 소설가 김중혁이 최근 출간한 <메이드인 공장>에다 농심의 라면공장을 둘러보고 '라면 한 가닥의 길이는 약 65센티미터이고, 라면 한 봉지에는 대략 75가닥의 면발이 들어간다'라고 적은 것을 읽으면서도 내내 마음 한쪽에서는 질투가 났다.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도 놓쳐버린 미련한 내 성정에 화가 났다. 하지만 어쩌랴! 지난 일은 잘 빤 행주처럼 깨끗이 잊어버리자는 게 철학이다. 잊는 것 빼고는 속상한 마음을 치유하는 법을 모른다.

 

북한음식도 국수공장 같은 거였다. 접근이 금지되어 있으니 호기심은 풍선처럼 늘 부풀어 올랐다. 시샘의 대상도 있었다. 신문사의 선배들 중에는 더러 취재차 평양을 방문해 단고기(개고기)나 옥류관 냉면 맛을 본 이가 있다. 쪼르륵 달려가 "선배, 육수는? 면은? 서울 평양냉면집들과 비슷해?" 물어도 시원한 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식도락가가 아닌 이들에게 그저 좀 독특한 한 끼 식사일 뿐이다.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놓치기 싫었다. 분수대 물보라를 만난 어린아이처럼 뛸 듯이 기뻤다. 질 좋은 국수는 찬란한 볕이 만든다. 그런 볕이 처마에 비추던 9월, 탈북 요리사 윤종철(58)씨를 만났다. 그는 투박하지만 솔직하고 담백한 이였다. 탈북 사연을 무용담처럼 떠벌리지도 않았다. 1998년 탈북해서 2000년에 서울에서 정착했다. 10년간 북한군의 장성급 전용식당에서 일했다고 했다. 주민들은 먹어볼 수 없는, 갖은 고급 재료로 음식을 만들었다. 그가 한 쿠킹스튜디오에서 솜씨를 발휘하는 그 현장에 카메라를 들고 찾아갔다. 북한식 어바이순대, 양배추김치, 쇠고기회무침, 옥수수국수 등을 그가 만드는데, 맛이 도통 궁금해서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였다.

 

<북한식 명태무침(왼쪽), 더덕튀김(가운데), 쇠고기회무침(오른쪽)>

 

 

 

혀는 벌써 바짝 준비태세를 갖췄고 침은 입술에 촉촉이 흘렀다. 끓는 물에 속을 꽉 채운 순대를 넣고 순대가 둥둥 떠오를 때마다 꼬챙이로 찔렀다. 번개 같은 속도다. 쿡쿡 눌러 구멍을 만드는 기술이 능숙하다. 주방에서 그는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자신만만한 사내였다.

 

<북한식 아바이순대>

 

 


그날 먹은 음식의 맛은 대체적으로 슴슴하고 처절할 정도로 담백했다. 배려가 없는 서울의 잔혹한 식도락가라면 아마도 혹독한 평가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이조차 단언컨대 옥수수국수만은 긍정의 한마디를 남길 것이다. 노란 색의 면 위에 빨간 고명이 냉큼 올라갔다. 쓱쓱 비비면 육수는 금방 붉게 물든다. 강원도의 올챙이국수와는 또 달랐다. 반전의 묘미가 있다. 투박해 보여 거칠 것이라는 생각은 오산이었다. 아기피부처럼 부드러운 면이 쓱쓱 식도를 타고 넘어간다. 옥수수 껍질을 벗겨 가루 내고 반죽해 뽑은 면이다. 구수한 육수는 돼지고기를 삶아 냈다. 북에서는 돼지고기가 없으면 멸치, 북어머리, 명태 등을 쓴다고 한다. 고춧가루 등으로 양념한 버섯은 면과는 다른 식감을 표현한다. 고명 아래 깔린 얇은 돼지고기살은 든든하게 속을 채운다. 짜릿한 시식이 첫 키스보다 빨리 끝났다.

 

<북한식 옥수수국수(왼쪽), 버섯 고명 준비(오른 위), 돼지고기 고명 썰기(오른 아래)>

 

 

 

<북한식 양배추 김치>


먹는 이들의 흐뭇한 표정을 발견하고서야 윤씨는 평온을 찾았다. 요리사가 천직임에 틀림없다. 그런 그가 몇 주 전 두 번에 걸쳐 전화를 해왔다. 첫 번째 전화는 취재가 고맙다는 소리였다. "기사 보고 방송에서 출연해달라고 연락 왔어요." 그의 목소리는 들떠있었다. 며칠 뒤 그는 "정말 불쾌했어요. 방송이란 데를 나가보니 음식 얘기는 안하고 맨 김정은, 북 정치 얘기만 물어봤어요." 한 종편의 시사 프로그램에서 그를 섭외한 것이다. 프로그램의 성격을 까맣게 몰랐던 그는 맛난 음식을 만들어 갔더랬다. "음식에는 사상이 있을 수 없다." 그의 철학이다. 그는 한 가지 소망도 있다고 했다. 남북이 하나가 돼서 같은 밥상에서 음식을 즐겁게 나눠 먹는 거다. 가을비 추적추적 내리는 날에는 그의 옥수수국수가 그립다. 때가 되면 원조 옥수수국수 면 제조공장을 제일 먼저 가볼 수 있을 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