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 수제비, 죽을 한 그릇에 담은
가선식당의 향토별미 어죽
어느새 3월, 봄이 부쩍 가깝게 느껴진다. 그러나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게 오락가락하는 추위로 자칫 감기에 걸리기 딱 좋은 날씨가 춘삼월(春三月)이다. 이런 날에는 몸 속을 뜨끈하게 해주는 영동의 '어탕국수' 한 그릇이 생각난다.
어탕국수는 원래 흐르는 개울이나 강물에 그물을 치고 천렵을 해서 잡은 물고기로 만든 국, 즉 '천렵국'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붕어나 피라미, 쏘가리, 동자개(빠가사리), 메기 등 각종 민물고기의 내장을 제거하고 푹푹 끓여 뼈의 진국을 우려내고 생선살을 발라내 제철 채소와 파, 마늘, 생강 등 갖은 양념을 넣어 끓이는데 여기에 국수를 넣으면 어탕국수, 수제비를 넣으면 어탕수제비, 밥을 말아서 끓이면 어죽이 된다.
어탕국수는 먹을 거리가 귀한 시절 서민들에게는 중요한 단백질 섭취수단이었다. 논밭 일을 일찍 마무리하고 해가 뉘엿뉘엿 지기 전, 삼삼오오 모여 동네 강가에서 천렵을 해 어탕국수를 끓여 그릇째 들고 후후 불어가며 한 그릇 먹고 나면 허기도 말끔히 가시고 노동에 지친 몸에 훈훈한 기운을 북돋워 주었다.
<가선식당 전경과 실내 모습>
소백산맥 지류를 따라 옹골찬 산들과 금강이 만난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 가선리에 있는 가선식당은 3대를 이어 57년째 한 자리에서 어죽을 끓여 팔고 있다. 깊은 산골짜기에다 인적도 드물어 동네 사람들이 천렵을 나가서 별미로 끓여 먹거나, 집에서 먹던 고깃국을 돈을 받고 팔기 시작한 건 1대인 김명재 옹이 고깃배로 물고기를 잡으면서부터다. 어업허가증을 취득하면서 배로 고기를 잡으니 고기가 너무 많이 잡혔던 것. 잡힌 고기 가운데 큼지막한 것들은 손질해 새끼줄에 꾀어 할머니가 멀리 옥천장에 이고 나가 팔고는 했다. 그런데 아무리 팔아도 파는 양보다 남아서 '고깃국'을 끓여 마을 사람들과 함께 나눠 먹는 것이 더 많았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과 나눠 먹기도 하고, 단체로 천렵을 오는 지인들의 부탁에 어탕을 끓여주다가 아예 음식점을 내보라는 권유로 가선식당을 열었다.
이곳에서 만난 김명제 옹은 "어죽은 고기 진액을 내는 것이 중요해. 4~5시간은 푹 끓여야 생선의 잡가시도 다 녹아버리고 비린내가 안 나거든. 아직도 진액 내는 것과 도리뱅뱅이는 내가 손을 대 줘야 해"라고 말한다. 김 옹은 15년 전 일을 도와주던 막내아들 김동환 씨에게 가게를 물려주고 이제는 뒤에서 고기 손질이나 진액 내는 것 등을 돕고 있다. 최근에는 손자가 가업을 잇기 위해 일을 배우고 있어 3대째 대물림을 하고 있다.
<가선식당의 대표메뉴 어죽 상차림>
가선식당의 대표메뉴는 '어죽'이지만, 어탕국수와 어탕수제비를 모두 합쳐놓은 형태다. 잡어를 푹 고아 체에 내려 진국을 내 고추장을 기본으로 고춧가루를 풀어 칼칼한 맛을 내고 국수를 넉넉히 넣은 후 반죽해 놓은 수제비를 떠 넣고, 밥을 조금 넣어 끓인다. 한소끔 끓으면 콩나물, 부추, 미나리, 깻잎, 대파, 들깨가루 등을 넣는데 감칠맛이 나면서도 시원하다. 매운맛을 원하면 다진 청양고추를 넣어 먹으면 된다.
<가선식당의 도리뱅뱅이>
가선식당의 어죽은 한 번 맛보면 자꾸만 손이 가는 매력적인 맛이 알려지면서 멀리서 일부러 찾아와 먹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1인분에 5,0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비해 양은냄비에 가득 나오는 어죽은 호로록 국수를 건져 먹고 난 후 수제비와 죽을 먹으면 또 다른 식감과 맛을 느낄 수 있어 두 배로 만족스럽다.
<가선식당의 도리뱅뱅이>
도리뱅뱅이와 빙어튀김도 별미다. 도리뱅뱅이는 빙어를 프라이팬에 빙 돌려 튀긴 후 양념장을 발라 한 번 더 익혀 부추와 함께 먹으면 되는데 깊이 밴 양념 맛과 튀긴 생선의 고소한 맛이 어우러져 입안의 풍미를 더한다.
<가선식당의 빙어튀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