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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아름답고 소수민족 정서가 풍부한

음식여행의 땅, 구이저우

 

 

 

구이저우(贵州)와 직항이 생긴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카르스트 지형이 만든 황홀한 절경과 풍성한 소수민족 문화가 살아있는 곳이 바로 구이저우가 아닌가? 연초에 EBS 세계테마기행에 필자가 출연해 구이저우를 소개하자 항공사가 서두른 건 아니겠지. 직항이 생기면 구이양(贵阳)까지 4시간. 중국의 보물을 유람하는 여행치고는 비교적 가깝다.

 

구이저우라는 명칭은 북송시대 보귀(普贵)라는 토호가 이 땅을 중원에 헌납하자 처음 역사에 나타나게 됐다. 더구나 사람들이 장이머우의 영화 <귀주이야기>와 깊은 연관이 있는 줄 착각하는데 공간배경도 주인공 이름도 아니다. 아무 상관 없다. <중경삼림>이 중국 충칭과 무관한 것처럼 말이다.

 

구이양은 갑수루(甲秀楼)라는 랜드마크가 있다. 높은 건축물은 아니지만 아담한 누각과 찻집이 어우러진 모습이다. 장원급제를 ‘갑’이라 하는데 그 정도로 문화적으로 성숙하면 좋겠다는 뜻으로 지은 이름인데, 실제로 청나라 때 전국장원이 이 지역에서 탄생했다. 특히 도시 속 인문이 풍부하게 드러난 야경은 볼만하다.

 

<갑수루 (왼쪽 위), 갑수루 찻집(왼쪽 아래), 갑수루 야경(오른쪽)>

 

 

 

갑수루에 취한 후 약 30분 걸으면 구이양에서 가장 번화한 야시장을 만날 수 있다. 칭윈루(青云路) 야시장은 온갖 이름난 구이저우 음식으로 시끄럽지만 다른 곳보다 깨끗하다. 거리를 걷다 보면 참 신기한 요리를 많이 만난다.

 

<나오화(왼쪽 위), 라오궈(오른쪽 위), 훈툰 재료(왼쪽 아래), 훈툰면(오른쪽 아래)>

 

어두운 거리지만 1㎞에 이르는 길 양 옆으로 온갖 요리가 낯설다. 나오화(脑花), 돼지 골을 매운 양념과 함께 불에 굽는다. 다 익으면 ‘뇌가 꽃이 피듯’ 채소에 살포시 싸서 함께 먹어도 된다. 재료나 요리 방법도 신기하지만, 작명 역시 기가 막히다. 이 요리를 먹었다고 하자 지인들이 ‘나도 머리에 꽃이 피면 좋겠다.’는 농담을 해 한참 웃기도 했다.
 
라오궈(烙锅)라는 요리도 꽤 먹음직스럽다. 채소, 고기, 소시지, 버섯, 감자, 두부 등이 모두 한꺼번에 볶아 나오는데, 불판 위에 수북하게 쌓고 골라 먹는다. 이 요리는 구이저우 서부의 작은 도시 수이청(水城)에서 유래한다. 명나라의 멸망과 청나라 건국을 함께한 한족 오삼계(吴三桂) 장군이 당시 이족(彝族)의 반란을 진압하려고 진군했다. 이때 소수민족이 식량을 대부분 가지고 달아나자 군량이 부족했다. 구할 수 있는 재료는 다 구해 기와 위에 놓고 불에 익혀 먹었다고 한다. 이것이 300년 이상이 지난 지금까지 전해져 구이저우의 특별 요리가 된 것이다.

 

식당 한 곳에 사람이 줄지어 섰기에 가보니 그 유명한 훈툰면(馄饨面)을 직접 만들고 있다. 물만두 비슷한데 다진 고기와 채소를 넣고 쪄서 육수와 함께 먹는다. 2~3초에 하나씩 아주 빠르게 만들어내고 있는 모습이 거의 묘기에 가깝다. 한 그릇 8위안 후딱 먹으면 배가 넉넉하다. 면이라기 보다 그저 훈툰이라 부르는 간식은 길거리 음식으로 알려졌다.

 

 

 

구이양 시 남쪽 외곽에는 명나라 시대인 14세에 조성된 군사요새인 칭옌구전(青岩古镇)이 있다. 장원급제의 고향답게 좡위엔티(状元蹄)라는 족발로 유명하다. 1근(500g)에 25위안(약 4,500원)이면 혼자 먹을 만하다. 맛이 약간 텁텁하고 약초 향이 나지만 우리 족발과 질감이 매우 비슷하다. 마을 안이 온통 족발 파는 가게가 많지만 가장 유명한 곳은 중국 국영방송인 CCTV에도 소개된 진비쉬엔(金必轩)이다. 이곳에는 완두(豌豆)를 재료로 채소를 함께 듬뿍 넣은 국수인 량펀(凉粉)이 중국 국수답지 않게 담백하다. 흥미로운 것은 만드는 방법이다. 보통 수공으로 만드는 국수는 반죽을 칼로 자른다. 이 완두국수는 <서유기>에서 저팔계가 들고 다니는 무기인 갈퀴로 긁어서 면발을 만든다.

 

<칭옌구전 입구(왼쪽), 좡위엔티(오른쪽 위), 완두량펀(오른쪽 가운데), 저팔계 분장(오른쪽 아래)>

 

그래서 마을 입구에 저팔계 분장을 한 사람이 서 있기도 하다. 국수를 만드는 방법도 다양한데 바로 옆집에는 맑은 면발을 구멍 뚫린 그릇으로 흘러내린 후 삶는 수공면도 있다. 마을 입구는 관광지로 변해 번잡하지만, 돌담으로 만든 호젓한 길도 있다. ‘청암’이란 지명처럼 푸른 빛이 도는 돌을 깔아 운치가 그만이다. 좁고 구불구불한 길을 걸으면 한없이 한가롭다. 그 옛날 소수민족을 토벌하기 위해 만든 요새에는 지금도 주민들의 거주공간이자 구이저우의 관광지로 번성하고 있다.

 

<수공면(왼쪽), 마을 돌담길(오른쪽 위), 고성 모습(오른쪽 아래)>

 

 

 

구이저우는 카르스트 지형이 만든 자연풍광이 중국에서 가장 멋진 곳이다. 구이양에서 서남쪽으로 약 110㎞ 지점에 황궈수(黄果树) 폭포군이 자리를 잡고 있다. 아침부터 노상에서 훈툰면 한 그릇 먹고 서둘러 폭포를 보러 갔다. 황궈수 대폭포는 위뿐 아니라 아래에서도 바라보기 좋고 오른쪽, 왼쪽으로 돌아 뒤쪽에서도 바라볼 수 있다. 특히, 손오공이 수련했다고 전해지는 동굴처럼 신비롭다고 수렴동(水帘洞)으로 이름 붙은 곳은 석회암을 뚫고 여섯 개의 창이 열려 있다.

 

폭포 뒤에 열린 테라스에서 보면 엄청나게 쏟아지는 물소리에 귀가 먹먹할 정도다. 무지개가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났다 사라지며 보는 방향에 따라 쌍무지개도 뜬다. 아시아에서 가장 커다란 폭포답게 높이는 70미터가 넘고 너비는 100미터에 이른다.

 

<황궈수폭포(왼쪽 위), 부이족 춤(오른쪽 위), 서하객 조각상(왼쪽 아래), 폭포무지개(오른쪽 아래)>

 

황궈수에는 소수민족인 부이족(布依族)이 많이 산다. 가끔 폭포 앞에서 민족공연이 펼쳐지기도 한다. 알록달록하고 진한 색감과 화려한 문양을 단 옷을 입고 춤을 추는 아주머니들이 정겹다. 폭포를 배경으로 펼치는 민속적인 정서가 자연과 어울려 더욱 진한 감동을 전해준다. 폭포를 바라보며 마치 솜처럼 하얗고 비단처럼 아름답다고 기록한 명나라 지리학자이자 여행가 서하객(徐霞客)은 부이족 무희가 앞에 있다면 무어라 극찬했을까 궁금해진다. 비단 날개를 타고 하늘로 오르는 선녀를 닮았다고 하지 않았을까 싶다.

 

 

 

입장권을 사면 이틀에 걸쳐 볼 수 있을 정도로 폭포가 많은데, 1년 365일 날짜가 새겨진 돌다리가 있는 수생보(数生步)도 있다. 자기 생일의 돌다리에 서서 기원을 하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한다. 게다가 역사 인물의 생일도 기록돼 있어 공부도 된다. 12월 26일 마오쩌둥(毛泽东)의 생일이 새겨진 다리 위에서 우연히 만난 아이가 있었다. 중국의 영웅과 같은 날 태어난 것만으로도 아이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 아이도 기도하고 있어 기특하다고 격려해준 적이 있다.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폭포도 있지만, 사방에서 한 곳으로 쏟아져 들어가는 폭포도 있다. 은련추담(银链坠潭)이라 부른다. ‘은 구슬이 떨어져 만든 못’이라는 뜻이다. 수만 개의 실오라기가 줄줄이 이어져 마치 흐느끼는 듯 하소연하며 애절한 소리를 낸다고 폭포를 소개하고 있다. 불과 10m 높이로 윗면은 마치 깔때기처럼 생겼고 아래가 움푹 홈이 파인 형상이다. 흐르는 물살은 크고 작은 구슬이 되어 잎사귀에서 떨어지듯 또르르 소리를 내며 낙하한다. 영원히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인연처럼 말이다.

 

<수생보(왼쪽 위), 마오쩌둥과 생일이 같은 아이(오른쪽 위), 은련추담 폭포(아래)>

 

 

 

폭포를 다 보고 되돌아오는 길에는 케이블카가 있다. 위에서 보면 온 사방이 정말 카르스트 지형을 뚫고 나온 물의 향연이라 아니할 수 없다. 다리 위의 다리라는 챠오상챠오상챠오(桥上桥上桥), 페이푸챠오(飞瀑桥)도 석회암이 연출한 독특한 광경이다. 온종일 폭포를 보고 나면 꽤 힘들다. 폭포를 시샘하듯 붉은 노을이 지는 시골 마을에서 하루 묵어도 좋다. 온갖 채소를 마음껏 골라 푹 우려낸 따뜻한 국물로 술 한잔 기울이면 신선의 세상을 다녀온 감회라도 생길지 모른다.

 

<황궈수 노을(위), 농가식당(왼쪽 아래), 식당 채소(오른쪽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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