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모아이 석상으로 유명한 이스터 섬, 저렴한 숙소를 구하다 원주민이 직접 운영하는 허름한 집에서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됐다. 그들은 자신의 터전을 더 이상 이스터섬이 아닌 '라파누이'로 불리길 원했다. 그들을 전세계에 유명하게 해준 모아이의 비밀을 알려준다.
‘라파누이’라고 불러 주세요
칠레 영토에 속해 있는 이스터(Easter) 섬은 남태평양의 동쪽 끝에 있는, 칠레에서 3,800km 떨어진 분화구 섬이다. ‘이스터’란 이름은 이 섬의 발견자인 네덜란드 제독 로헤벤이 1722년 부활절에 발견한 것에서 유래했다. 그러나 섬사람들은 이스터 섬을 '라파누이(Rapanui, 큰 섬)' 또는 '테피트오테헤누아(세계의 배꼽)'라고 부르고 있다.
칠레 산티아고에서 비행기로 4시간 반이 걸려 도착한 남태평양 한가운데 섬에서 제일 먼저 할 일은 숙소를 잡는 것이다. 저렴한 숙소를 찾다 따라간 곳은 우연히도 이 섬 최고의 터줏대감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섬 원주민 대부분이 그의 친척이고 친구다. 매일 밤 공연을 위해 원주민들이 모여 그의 앞마당에서 라파누이 전통춤을 연습했다. 덕분에 우리는 그들의 꾸밈없는 공연을 매일 밤 보며, 그들의 생각과 문화와 음식을 함께할 수 있었다.
원주민과의 화려한 만찬, 세비체
라파누이들을 따라 고기잡이를 따라 나섰다. 수경 하나 달랑 끼고 물속으로 뛰어들어 그물을 길게 펴고는 반대편에서부터 헤엄쳐 고기를 몰아 잡는 라파누이식 고기잡이다. 그리곤 잡은 생선을 즉석에서 껍질 벗겨 칼로 썰어 내게 내밀었다. ‘세비체(Seviche)’, 바로 회다. 원래 세비체는 페루지역의 해산물 음식으로 해물이나 생선을 레몬즙이나 간단한 소스로 버무려 내놓는 음식이다.
3~4시간 고기잡이로 만선의 기쁨을 함께 누렸다.
다음은 그들의 농장이다. ‘구마라(Kumara)’라고 불리는 고구마는 당도가 높아 삶거나 구워 다른 음식과 함께 나온다. 뉴질랜드와 남태평양의 섬에서도 고구마를 ‘큐마라’라고 부르던데, 우리의 ‘고구마’와 남태평양의 ‘구마라’의 발음이 거의 같다는 생각을 하니 세상 반대편에 있지만 그 뿌리는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바다에서 갓 건져 올린 생선으로 세비체를 버무리고, 장작불에 구마라(Kumara)를 삶았다. 또 장작불 위에 다공성의 현무암을 올리고 소갈비를 통째로 올려 라파누이식 아사도(Asado)를 굽는다. 마무리로 우리가 준비한 고추장과 신라면 스프로 맛을 낸 코레아노 소파를 맛보고는 다들 손을 치켜든다.
싱겁게 삶아 내온 닭요리인 뽈요(Pollo)와 밍밍한 스파게티 사이에 한국식 소시지 야채볶음까지… 보드카 칵테일을 만들어 함께 잔을 기울이며 마누야(Manuya, 건배)를 외쳤다. 어느새 라파누이의 마지막 밤은 깊어가고 우리는 그렇게 국경을 초월한 아미고(Amigo, 친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모아이의 비밀
이스터 섬을 유명하게 해준 모아이 뒤엔 슬픔의 역사가 있다. 200km2가 채 되지 않는 크지 않은 섬에 처음으로 원주민들이 도착했을 때에는 거대한 나무들과 풍부한 식량으로 지상낙원이었다. 그러나 인구가 늘기 시작하고 먹을 것이 부족해지자 그들은 파벌을 나누고, 부족 간 힘을 모을 상징적 존재가 필요했다고 한다. 그렇게 모아이의 크기로 부족 간 힘을 과시했고, 결국 더 큰 모아이를 만들고 옮기기 위해 섬의 나무들은 하나둘씩 없어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더 이상 모아이를 만들 나무가 없자, 생존을 위한 처참한 아귀다툼이 벌어졌다. 그렇게 공룡처럼 그들의 역사도 함께 사라져갔다.
라파누이들이 부족 간 파벌을 나눠 더 큰 모아이를 만드는 대신, 함께 힘을 모아 땅을 일구고 큰 배를 만들어 물고기를 잡고 더 큰 세상을 향해 항해했다면 그들은 모아이가 아닌 라파누이로 역사 속에 이름을 남겼을 것이다
농심 BD팀에서 근무하는 김선호 과장입니다. 농심 연구소로 입사해 소재, 바이오 식품, 건강 관련 업무를 담당하다 뜻한 바가 있어 전세계 음식문화 탐사를 주제로 1년간 세계 일주를 다녀 왔습니다. 이를 계기로 좀더 넓은 방면의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연구원 출신의 전문지식과 전세계 음식문화 체험 노하우를 바탕으로 심심블에서 다양한 정보와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